이씨(李氏) 득성의 유래 — 복희씨에서 이한까지
이씨(李氏) 득성의 유래 — 복희씨에서 이한까지
1. 복희씨(伏羲氏) — 가장 오래된 전승의 출발점
다만 중요한 점은 『신당서』의 이씨 계보가 복희씨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희 → 이씨
라는 관계는 후대 족보·성씨 전승의 상고계보로 다루어야 하며, 역사적으로 입증된 직계 혈통으로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2. 황제(黃帝) → 창의 → 전욱 고양씨
『사기』 「오제본기」에서 보다 분명한 계보가 나타납니다.
帝顓頊高陽者,黃帝之孫而昌意之子也。
독음: 제전욱고양자, 황제지손 이창의지자야.
뜻: “전욱 고양은 황제(黃帝)의 손자이며 창의(昌意)의 아들이다.”
따라서 사료상으로는
황제(黃帝) → 창의(昌意) →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
관계가 『사기』에서 확인됩니다. 여기의 황제는 皇帝(임금)가 아니라 黃帝(헌원 황제)입니다.
3. 고요(皋陶)와 理氏의 형성
『신당서』 권70상 「종실세계표」는 이씨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李氏出自嬴姓。
독음: 이씨 출자 영성.
뜻: “이씨는 영성(嬴姓)에서 나왔다.”
이어 전욱 고양씨에서 고요(皋陶)로 계보를 연결하고, 고요가 요임금 때 대리(大理)라는 사법관직을 맡았다고 기록합니다.
그 후 후손들이 대대로 대리(大理)를 맡았기 때문에
世為大理,以官命族為理氏。
즉 “대대로 대리 벼슬을 하여 관직 이름을 따서 理氏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전승상 핵심은
고요(皋陶) → 대리(大理) → 관직의 理를 따서 理氏
입니다.
4. 理氏에서 李氏로 — 이씨의 득성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 때 이징(理徵)이 직언하다 죽임을 당했다고 『신당서』는 전합니다.
그의 아내가 아들 이리정(理利貞)을 데리고 피난했고, 굶주림 속에서 나무 열매를 먹어 살아남았습니다.
『신당서』의 유명한 구절입니다.
食木子得全,遂改理為李氏。
독음: 식목자득전, 수개리위이씨.
뜻:
“나무 열매(木子)를 먹어 목숨을 보전하였으므로, 마침내 理를 고쳐 李氏로 삼았다.”
여기서 木 + 子 = 李라는 설명과 연결되어 理氏 → 李氏로 성을 바꾸었다는 것이 전통적인 이씨 득성설(得姓說)입니다.
다만 이것 역시 『신당서』가 전하는 고대 성씨 유래 전승이지, 상나라 시대의 동시대 사료로 입증된 사건은 아닙니다.
5. 이리정 이후와 노자
『신당서』는 이리정 이후 계보를 계속 기록하면서 후손 가운데 이이(李耳), 즉 노자(老子)를 언급합니다.
生耳,字伯陽,一字聃
“이(耳)를 낳았는데 자는 백양이고 또 다른 자는 담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중국 이씨 계보는 대략
고요 → 理氏 → 이징(理徵) → 이리정(理利貞) → 李氏 득성 → … → 이이(李耳, 노자) → 여러 중국 이씨 계통
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조선왕조실록에 직접 기록된 전주이씨 선계입니다.
『태조실록』 태조 2년(1393) 9월 18일 정릉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臣謹按璿源所自,全之望族。有司空諱翰,仕新羅。
쉽게 풀이하면,
“신이 삼가 왕실 선원의 기원을 살펴보니, 전주의 명망 있는 집안으로서 사공 휘 이한은 신라에 벼슬하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어 실록은 이한이 신라 태종왕의 10대손인 군윤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혼인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후손 계보를 이자연→이천상→이광희→이입전 등으로 이어 목조 이안사까지 상세히 기록합니다.
따라서 전주이씨의 사료상 시조는 신라 사공(司空) 이한(李翰)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전체 흐름을 한눈에 보면
[상고 전승]
복희씨(伏羲氏)
→ …
→ 황제(黃帝)
→ 창의(昌意)
→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
→ …
→ 고요(皋陶)
→ 대리(大理) 관직
→ 理氏 형성
→ 이징(理徵)
→ 이리정(理利貞)
→ 「食木子得全」
→ 理氏를 李氏로 변경 — 이씨 득성
→ … → 노자 이이(李耳) → 중국의 여러 이씨 계통
→ 신라 사공 이한(李翰)
→ 전주이씨 시조
→ 후손 계승
→ 이양무 → 목조 이안사 → 익조 → 도조 → 환조 → 태조 이성계
“이씨의 상고 기원은 복희씨 등 고대 제왕까지 연결하는 후대의 계보 전승이 있으며,
『신당서』는 전욱·고요 계통에서 理氏가 형성되고 이리정 때 李氏로 바뀌었다는 득성설을 전한다.
한편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은 『태조실록』에서 신라에 벼슬을 한 전주의 명망 있는 집안 출신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두 계보 사이의 직접적인 혈연 연결은 현존 사료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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